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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소식

전략은 없고 독기만 있었다

산다는것 2014. 11. 20. 19:31

2012년 총선분석 3편
-전략은 없고 독기만 있었다-

진해시민후보단일화 추진위원회가 김병로 후보를 무소속시민후보로 선정하는 기자회견을 하자 바로 나머지 무소속 후보들이 반발하여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들은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의 결정에 크게 반발하였고, 진해선관위에 김병로 후보 유사단체라는 등의 내용을 거론하면서 고발하였다. 이 사건은 진해선관위에서 혐의없음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는 상당한 역풍을 맞았다. 이후 이춘모 공동집행위원장의 사퇴로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의 입지는 크게 약화되었고, 좀 더 단일화 노력을 한 후 선정해야 하는데, 무소속시민후보 선정시기가 다소 빠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야당들의 단일후보가 곧 선정되는 시점에서 무소속 후보를 단일화하여 야당후보와 경선을 해야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이후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경선을 거쳐 야권단일후보가 결정되었고,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원회에서는 무소속 시민후보와 경선을 치루어 후보등록일 이전에 단일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김병로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무소속 후보들은 김병로 무소속시민후보 선정 기자회견이후 아에 대한 반발 기자회견에서 무소속 4명의 후보들은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후보를 단일화하기로 조정하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후 이들 4명의 무소속 후보들은 여론조사를 시행했지만 표본의 문제로 여론조사가  중단되어 이들 4명의 후보들도 큰 갈등을 겪었다. 이러다보니 후보등록일이 되어도 조정된 것은 전혀없었고 이후 단일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 진행했지만, 후보들의 참여거부와 단일화를 거부하는 사태등으로 말미암아 전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본 후보 등록이 끝나자 창원KBS는 진해지역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였고, 그 결과 새누리당 김성찬 28.1%, 무소속 김병로 후보18.2%, 민주통합당 김종길 후보 11.8% 무소속 김하용 후보 4.7%, 무소속 변영태 후보 3.1%였다. 이 여론조사 이후 무소속 변영태 후보는 지난 기자회견에서 여론조사의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밝힌다고 하였기 때문에 후보를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 민주통합당 김종길 후보와 무소속 김하용 후보와의 후보단일화 협상이 진행되었고, 여론조사까지 시행되었지만 양쪽 진영의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불과 2시간만에 중단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무소속 김하용 후보는 사퇴하였다. 이후 책임공방이 있었으며, 민주통합당 김종길 후보의 단일화 거부로 인해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와의 갈등은 더욱 고조되었다. 

그리고 이제 후보단일화 문제가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희망진해사람들 및 시민들, 민주당의 사람들도 단일화를 촉구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이들의 단일화 촉구는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의 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후보단일화를 해야만 새누리당에 승리하고 진해시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절박감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결국 후보단일화는 완전하게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유력후보들의 후보단일화는 마침내 이루어졌고 3일간 함께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그리고 선거 하루전날 밤 허위사실을 유포라는 지적을 받는 문자메시지 발송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같은 사건을 종합하면 후보단일화 과정이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론조사가 무려 2번이나 무산되었고, 온갖 불신속에서 여론에 떠밀려 단일화과정을 이루다보니 유권자들에게는 상당한 실망감을 안겨준 것이다. 또한 너무 늦게 단일화가 이루어지다보니 그 효과는 미미하였고, 선거 당일에도 이 사실을 모르는 유권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일화과정을 거치면서 후보들끼리, 시민단체들과 너무 막말이 오가 극도의 감정대립이 심화되었고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할 수 있는 전략도 만들지 못한 것이다.(다음편에 계속)
 

'2012-04-14', 


 2012 총선분석 2편
-민주당의 패착과 김병로 공포증-

진해선관위에 제출한 새누리당 김성찬 당선인측 사무장의 명의로된 소명서에는 “김병로 후보가 자신들의 측근들로 구성된 진해범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를 동원해 시민후보로 추대케 하였다”고 하였다. 이 말은 일부 다른 후보들도 그동안 계속 주장하였던 말이고, 실제로 일부 무소속 후보들이 진해선관위에 고발한 적도 있는 사건이다. 진해선관위는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원회의 인물들에게 혐의가 없음을 통보하여 일단락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부 무소속 후보는 계속 이 문제를 제기하였고 급기야는 새누리당 캠프에서도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원회 구성이 처음 논의된 시점은 시민단체, 시의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측의 사람들이 경남 혁신과 통합의 인사들과 만난 후 이루어졌다. 물론 경남혁신과통합의 인사들이 이 기구를 제안한 것은 아니었고, 이들과의 만남 후에 몇몇 시민단체회원과 시의원들이 논의하여 구성하기로 합의하였고던 것이다. 이 당시에는 진보당 측 사람과 일부 시민단체는 이 논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들의 반발은 있었지만 결국 진해시민후보단일화 추진위원회는 구성되었다. 

당시 진해시민후보단일화추진위 구성에서 진보당과 일부시민단체의 반발이 있었던 원인은 너무 신속히 추진되는 원인도 있었지만 운영위원의 배분에서 너무 일방적으로 민주당 측 인물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민주당측 운영위원의 숫자와 민주노동당 측 운영위원 숫자, 시민단체 인원을 균등하게 배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일부 시민단체는 형식적인 참여에 그치고 진보당은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민주당 측 사람이 진해시민단일화 추진위원회에 많은 숫자를 차지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후보자 측 사람을 무조건 1인씩 운영위원으로 배정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민주당의 예비후보는 4명이었던 반면에 진보당은 아직 후보군이 없었기 때문에 진보당 측 사람이 민주당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초기의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는 민주당 측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참여했던 것이다.

이후 2012년 1월에는 김병로 후보가 출마선언을 하게 되었고, 당시 민주당 측 예비후보들은 김병로 후보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무소속 예비후보들은 김병로 후보가 민주당에서 경선을 하기를 바란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 때부터 모든 후보들이 김병로 후보와의 경선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김병로 후보는 1월말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여 민주당 후보들은 자신들이 만든 경선룰을 토대로 2월안에는 1명으로 압축하기로 상당부분 합의하였던 상태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민주당에서 나타났다. 당초 민주당의 예비후보들은 지역의 의견을 중앙에서 존중하여 지역에서 결정하면 중앙이 공천을 해 줄 것으로 생각했지만, 민주당은 이러한 배려는 없었고, 중앙에서 공천심사를 하여 결정했던 것이다. 결국 시의원까지 사퇴한 김하용 후보와 전 도의원을 지낸 김종률 후보는 과거의 한나라당 전력으로 말미암아 공천에서 탈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반발하여 김하용 후보는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었고, 민주당은 모바일 경선 등으로 후보자를 3월 7일이 되어서야 확정되었다. 또한 경남의힙에서 합의한 통합진보당과의 후보단일화로 말미암아 후보등록 4일전인 3월 19일이나 되어서야 야당단일후보가 확정된 것이다.

결국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원회는 민주당의 일방적인 일정에 밀려 민주당 측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구성하였지만, 정작 민주당 후보의 결정에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던 한계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오히려 민주당 공천결과에 불복하여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후보까지 발생하다보니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원회에서는 무소속 후보들의 단일화를 추진하였지만, 민주당 예비후보들도 회피한 김병로 후보와의 단일화를 무소속 후보들이 반길리는 없었다. 한마디로 김병로 후보는 정당의 후보뿐만 아니라 무소속 후보들도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매번 경선 규칙을 논의했지만 경선규칙을 만드는 데에는 실패하였고, 후보들은 경선규칙을 제안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는 후보등록일이 점점 다가오자 무소속 후보를 단일화하여 정당 후보와 단일화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그러나 무소속 후보들이 김병로 후보와의 경선자체에 소극적으로 대응하였고, 진해시민단일화추진위원회는 아무도 김병로 후보와 경선을 하지 않을려고 하자 무소속 시민후보로 김병로 후보를 확정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