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통합 무효, 진해시 되찾기 시민연대를 출범하며- 2010년 7월 진해시민의 의사가 무시된 강제통합의 결과물인 통합창원시가 출범하였다. 이후 거리에는 진해라는 문구는 점차 사라지고 창원이란 문구가 도배되기 시작하였다. 통합창원시장 선거에도 진해출신은 눈에 띄지 않았고 규모가 큰 창원, 마산지역 출신의 후보들이 내놓는 공약만 들어야만 했다. 시청도 창원으로 가고 기타 공공기관도 창원으로 이전하여 상권의 붕괴를 가져왔다. 2011년이 되면서 공공요금도 인상되어 구창원시와 동일하게 지불하게 되었다. 또한 진해지역의 집값이 저평가 되어 창원시 수준의 집값이 되어야 한다며 여론몰이까지 하고 있고 그 결과로 주택가격이 폭등하여 서민의 한숨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다. 이제 거리의 현수막 게시판을 보아도 진해지역의..
보 도 자 료 - 민주노동당 창원시당의 황당한 시민투표 발언에 대한 입장 지난 11월 4일 창원시의회는 긴장감이 감돌면서 3개시 분리안과 청사조기 확정안을 의결하였다. 한마디로 자율동합으로 위장한 강제통합의 부작용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해결책이 나오지만 대부분 원론적인 수준에 불과할 뿐 뚜렷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청사문제만 들여다보아도 각 지역간의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7일 민주노동당 창원시당의 기자회견의 내용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내용뿐이었다. 그것은 청사소재지를 시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말이 어찌 민주노동당의 기자회견에서 나올 수 있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시민투표로 결정하자는 발언은 구창..
오늘 아침 8시 진해에서 팽목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진해시국회의 회원들과 함께 승합차를 이용하여 총 8명이 다녀왔습니다. 진해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약 4시간 가량 소요되었습니다. 오고 가는데 8시간 정도 소요되는 장거리이더군요. 진도 팽목항에 도착하니 쓸쓸함과 간절함, 애통함이 교차하였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슬픔에 잠긴 바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12명의 실종자가 차디찬 바다에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심정이 우리에게도 엄습하는 데, 실종자 가족들은 얼마나 마음이 찢어질지 말로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팽목항에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리본이 걸려 있었고, 방송차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종교단체의 기도처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실종자 가족을 지원하고 있었습니..
통합창원시 분리 가능할까? -창원시는 야구장을 왜 진해로 결정했나?- 통합창원시가 파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창원시의회현안특위(9인회의)에서 마산분리안을 합의하고 오는 23일 임시회 마지막날에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창원시의회는 지난 2011년 말에도 3개시분리촉구안을 가결한 바 있고, 이번에 통과되면 두 번째이다. 2011년에는 3개시분리촉구안과 창원시청사조기결정안이 동시에 추진되어 모순된 결과라 하여 많은 비난을 자초하였고,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번 결의안은 마산과 창원의 싸움에 정점을 이루는 것으로 사실상 결별선언에 가까운 상황이다. 2009년 3개시 통합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곳은 마산이다. 마산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었으며, 부채도 많은 상황이라 통합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청사 위치는 진해와 마산으로 결정되어야 - 창원시는 술수를 중단하고 의회는 통준위 1순위로 결정하라- 연일 창원시 청사위치를 결정하는 문제로 지역이 들끊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마산 YMCA에서 창원시는 청사위치를 결정하는 여론조사를 중단하고, 통준위에서 결정한 마산과 진해라는 1순위안에서 결정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에 그동안 잠잠하던 진해지역의 시민단체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7일 창원시청에서는 희망진해사람들, 진해여성의전화, 진해시민포럼의 주관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통합할 당시 통준위에서 합의한 1순위인 진해와 마산에서 청사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이들은 1순위와 2순위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1순위가 불가할 때 2순위를 검토하는 것이 기본적인 상식인데, 창원시와 일부 시의원..
군항도시 진해탄생 배경 일찍이 제포 왜관 설치 후 삼포왜란이 발발하였고 그로부터 100년도 못돼 임진왜란을 겪은 진해지역이 다시 300여 년 만에 일본에 의해 식민지 군항도시가 되었습니다. 넓지 않은 한 지역이 일본이라는 인접한 나라와 이처럼 모진 악연을 이어오다가, 해방 후부터는 우리나라 해군의 요람이 되어 지금에 이른 도시가 진해입니다. 일본이 진해를 군항으로 삼은 것은 10년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청일(1894-5년) 러일(1904-5년) 두 전쟁을 거치면서 아시아 패권국이 되겠다는 야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대마도를 중심으로 남쪽의 좌세보(佐世保, 사세보)와 북쪽의 진해에 군항을 두어 대한해협을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할 수 있다는 전략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진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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