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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소식

해방이후의 진해 유적들

산다는것 2017. 10. 13. 15:32

최근 어떤 분이 진해라는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현 진해지역은 조선시대 웅천현이었으나 일본이 진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기에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진해를 웅천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분의 말대로라면 창원시 진해구가 아닌 웅천구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 주장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해라는 명칭이 벌써 100년이 넘게 쓰여졌고, 

전 국민에게 각인된 상황에서 굳이 낯선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한가 싶습니다.

차라리 일제가 진해라는 도시에서 무얼 하였고, 그 속에서 의미를 제대로 찾는 일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찾기 위해서 진해에 담긴 역사를 그동안 나름대로 정리하여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해방이후에 진해에 남은 흔적들을 살피면서 바꾸어야 할 것은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진해라는 명칭은 1914년 진해면으로 출발합니다. 이후 1931년 진해읍, 1955년 9월 진해시가 되었으며,

당시 인구가 7만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010년 7월 진해시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의 강제통합으로 말미암아 창원시로 흡수통합되어 진해구로 바뀌게 됩니다.


진해라는 도시는 한국전쟁시에도 전쟁피해가 거의 없어 옛 일본인의 도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진해 해설사들의 주장대로라면 이승만 대통령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해군 영내에 있는 이승만 별장을 말하기도 하고,

1949년 대만 장개석 총통과 이승만 대통령의 진해회담, 1954년 제1회 아시아반공민족대회가 열린 곳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위 내용을 자랑삼아 얘기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이승만이 자신의 권력유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진해를 이용한 불행한 역사가 있다고 해설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진해는 6.25전쟁과는 별 관련이 없었는 데, 한가지 관련있는 곳은 영해루(원해루)입니다.

이 곳은 6.25전쟁시 유엔군 포로가 된 중국군 출신 장철현 씨가 1950년대 중순경 '영해루'라는 상호로 문을 열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태화관'이란 중국집을 하던 화교인 진검제 씨가  인수한 후 그 후손에 의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간판은 '원해루'라고 되어 있는데, 

영해루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현주인의 불찰로 영해루라는 이름의 상표등록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다른 곳에서 '영해루'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하여 사용하고 있기에 그 이름을 쓰지 못하고 

약간 변형한 이름 '원해루'를 쓰고 있습니다.

아직도 진해에는 유명한 다방이 있는 데, 바로 '흑백다방'입니다.

이 곳은 화가 '유택열'이 1955년에 만들어진 고전 음악다방 '칼맨'을 1962년에 인수하여 흑백다방으로 명명하여 운영되고 있습니다.

1960-70년대 진해문화의 중심역할을 하였고, 지금도 이 곳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현재 장난감 도서관에는 논란이 많은 10월 유신탑이 있습니다.

전국에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신탑은 진해가 유일한 데, 이를 자랑거리로 해야할 지는 의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없애버리고 싶지만, 잘못된 과거를 후세에 가르칠려면 보존할 필요도 있다고들 합니다.

이 팁은 1973년 10월에 만들어졌으며, 원래는 중앙로에 위치해 있었으나,

중앙로에 있기에는 부적절하여 1997년 11월에 현 위치로 이동하였습니다.

이승만 별장은 해군영내에 있으며, 

이 곳은 유형문화재 265호로 과거 일본군 통신대가 사용하던 곳을 1945년 해군에서 인수, 개조한 곳입니다.

이 곳은 대지 998제곱미터에 건물면적 218제곱미터로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집무실, 경호실, 응접실, 침실, 회의실이 있으며, 

별장에서 서쪽으로 500미터 지점 해안절벽 위에는 갈대로 지붕을 덮은 육각정이 있습니다.

이 외에 군항마을 역사관이 있는 데, 2012년 11월 8일에 개관하였고, 1,2층 합하여 총 47평으로 

중앙동 노인당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곳입니다.

2014년 10월30일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 7호 기록사랑마을로 지정받았습니다.

이상으로 그동안 미약하나마 경화동부터 출발하여 진해 구시가지 유적등을 살펴보면서 제 나름대로 정리하였습니다.

진해에 대해서 나름대로 정리된 사고를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써 보았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주변에서 격려도 받았고, 다른 것도 써 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는 진해 장복산 케이블카 문제를 정리해서 글을 올려달라고 하시는 분의 요청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포스팅은 장복산 케이블카 문제를 언론상에서 제기된 것 등을 정리하여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