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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소식

산신령의 저주

산다는것 2017. 9. 19. 15:15

 진해에 있는 산을 말하면 흔히 제황산을 많이 거론합니다.

해발 90미터의 작은 동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제황산은 구진해도심권의 상징처럼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일제강점기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황제가 날 곳이라는 제황산이기에 일제가 산봉우리를 깍고 러일전쟁전승 기념탑을 세운다고 하니,

주민들의 자괴감이 참으로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산신령의 저주라는 전설까지 등장하게 된 것 같습니다.


농협에서 발간한 '경남의 전설'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러일전쟁전승기념탑을 세우기 위한 기초 공사를 하던 어느 날, 묘법사 주지스님의 꿈에 산신령인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주지스님에게 지시를 합니다. 무도한 일본놈들이 나의 두상을 깎아버려서 이렇게 피를 흘리고 있다. 너는 도를 닦은 승려이니 일본 해군 사령관에게 공사를 즉시 중지하라고 전달 할 것이며, 본래대로 산봉우리를 복구할 것은 물론 다시는 이런 무례한 짓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라,

 

 만약 내 말을 그대로 이행하지 아니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를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묘법사 주지스님은 지체하지 않고 일본 해군 사령관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으나 사령관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1927년 4월, 진창선 철도개설 기념회가 에 열렸는데 이를 관람하기 위하여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이 이 배를 타고 현동부두로 입항하려다가 전복하여 많은 희생자를 내고 말았습니다. 백발노인의 저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 후 부엉산 산신령이 묘법사 주지스님에게 나타나서 다시 말 합니다. 내가 너에게 부탁을 하여도 공사를 중지하지 않아 내 영험을 바다에서 보였는데도 믿지 않으니 다시 경고한다. 공사를 즉각 중지하고 본래대로 다듬어 놓지 않으면 큰 변이 일어날 것이다. 

 

묘법사 주지스님은 또 다시 일본 해군 사령관에게 꿈 이야기를 전달하였으나 일본군 사령관은 이번에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산에서 변이 발생합니다. 케이블카 다섯 대에 석재를 실어 산 정상으로 끌어올리다가 와이어로프가 끊어지면서 케이블카가 산산조각 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당시 이곳에는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이 뒤 섞여 일을 하는데, 중국인과 한국인은 다치지 않고 일본 사람들만 사상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공사는 진행되었고 러.일승전기념탑은 준공됩니다.  <  ‘경남의 전설을 찾아서’인용 >


러일전쟁승전기념탑을 제황산 봉우리에 세우기 위해 산을 깍는 것을 산신령의 두상을 깍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주민들은 제황산 봉우리를 까는 것을 마치 황제가 날 곳을 없애는 것이기에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진해주민들의 희망인 제황산 봉우리를 깍고 일제는 러일전쟁승전기념탑을 세웁니다.

하지만 일제도 그 댓가를 반드시 치루게 됩니다.


1930년 3월 10일 오후 2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날은 일본육군기념일로 조선진해요항부단공장에서 조선요항사령부가 축하연회를 갖습니다.

이 자리에서 군사영화를 관내 일본학생들에게 보여주던 중 화재가 일어납니다.

이 화재로 당시 진해공립심상고등보통학교 소학년생 53명과 보호자 3명, 유아 47명이 사망을 하게됩니다.

또한 중경상자가 100여명 되었으니 엄청난 대화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당시250명 관람)

이 사건은 일본 본토의 대판매일신문에도 기사화되었으니 일본인에게는 큰 상처를 안긴 화재였던 것입니다.


이 화재로 인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당시 덕환관음사에 육군대장의 이름을 따라 추모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 추모비가 있던 덕환관음사의 터에 현재는 천리교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일제가 자신들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제황산 봉우리, 산신령의 두상을 깍고 진해주민들의 희망을 뭉갰던 그 저주가

일본인들의 어린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외에도 1930년 장복산 굴을 내려오던 열차가 굴 한가운데서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현재 덕환사 자리에 있는 천리교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