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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에 저는 제황산에 있는 일제가 세운 러일전쟁승전탑을 복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러일전쟁승전탑이 제황산에서 진해일대를 내려다보는 광경은 어찌보면 치욕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그 치욕의 역사는 우리가 자초한 측면이 있기에 다시는 이런 비극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러일전쟁승전탑을 복원하여 치욕의 역사를 항상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조선의 주류는 자주파는 없고, 항상 사대주의자들었습니다.
이들은 명과의 사대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 정당성, 명예를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들이 멸시하던 여진족이 강성하여 청나라가 등장하자,
이들은 청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자신들을 지켜준 명과의 사대관계가 꺠지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여진족에 머리를 숙이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여겼던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자존심도 있었겠지만,
이보다는 오히려 계급사회인 조선에서 자신들보다 미개하다고 여기는
일반 민초에게도 머리를 숙일 수 있다는 두려움도 상존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양반들의 기득권과 자존심 때문에 조선의 민중들은 크나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기득권들은 인조가 큰 수모를 당하긴 했지만, 계속 기득권을 누려왔습니다.
조선말이 되자 이들은 일본에 미곡수출을 하면서 큰 재미를 보았습니다.
조선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많음에도 일본에 쌀을 수출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열강에 갖가지 이권을 제공하여 이득을 챙겼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농민들은 이로 인해 더욱 더 많은 수탈을 당해 더이상 살기가 어려웠고,
마침내 동학농민혁명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동학군은 전주성을 함락시겼고, 이에 당황한 고종과 민비는 청과 일본에 군사적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외세가 개입할 염려가 커지자 동학군은 황실과 번주화약을 맺고 해산시켰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도 않았고, 청과 일본군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시 동학놈민군이 일어났고, 일본군은 신식 무기를 동원하여 무참하게 진압하였습니다.
민비가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수시로 청과 일본군을 동원하여 진압하는 방식의 참사였습니다.
어쨋든 자업자득인지 민비는 일제에 의해 살해당하는 결과도 낳았습니다.
또한 청일전쟁을 야기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일본의 조선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배상금 3억엔, 라오뚱반도, 타이완, 평후 등을 할양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프랑스와 독일이 라오뚱반도를 일본이 차지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일본은 랴오뚱 반도를 포기하여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게 되는 데,
이 때부터 러시아에 대한 앙금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더구나 고종의 아관파천 등으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에 방해가 되는 나라가 러시아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러시아에 대한 보복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마침내 일본은 러시아 군대가 주둔한 중국 여순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함락시킵니다.
이후 육상전인 봉천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냅니다.
이 전쟁시 120만명의 일본군 중에 사상자 68만 9천여명(전사자 13만 5000명 포함)이었으니, 일본군이 승리는 했지만,
막대한 출혈을 감수하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군도 40여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봉천전투이후 러시아 군대는 하얼빈에 집결 반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일본군도 여기에 대비하고 있었지만,
러시아와의 전쟁기간 2년동안 19억원을 전비가 지출돼 종전을 서둘어야 할 입장이었고,
러시아도 국내에서 일어난 혁명 등으로 인해 서둘러 강화조약을 맺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이 조약에 결정적으로 일본에 유리하게 만든 전쟁이 바로 쓰시마 해전입니다.
1905년 5월 27일 새벽 4시 45분, 진해만에서 대기하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의 도고 사령관은 24시간 계속된 해전에서 발틱함대를 격파,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을 포로로 잡아 대마도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냅니다.
당시 발탁함대는 세계 최강의 함대로 일본이 승리할 거라고는 예상한 나라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아 유럽의 리비우항을 떠나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 출격한 발탁함대는 전력과 전의가 극도로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발탁함대를 격파했음에도 러시아 육군은 그대로 존재했지만
양국 모두 막대한 전비 지출로 계속 전쟁을 수행하기는 부담이 컸습니다.
결국 미국의 중재로 포츠머스 조약이 맺어지고, 일본은 만주에 대한 배타적인 진출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요인중의 하나는 미국과 영국이 일본을 지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부 학자들은 러시아를 상대로 미국의 대리로 일본이 수행한 전쟁이라고도 주장합니다.
미국은 일본을 대리자로 세워 러시아의 남하를 막았던 것입니다.
이제 19세기 말 외세들이 조선을 갖고 흥정한 사례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청일전쟁 발발 전 영국의 킴발리경이 남쪽 4도를 일본,
북쪽 4도를 청의 영향권으로 하는 중재안을 제기했으나 청의 거부로 무산되었습니다.
두번째는 1896년 야마가다-로바노프협정을 통하여 일본이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북쪽을 러시아의 영향권에,
남쪽을 일본의 영향권으로 한다는 한반도분단 제의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러시아가 거부하였습니다.
세번째는 1903년 러시아가 세가 불리해지자 1896년의 일본이 제의한 것을 역제의 했지만 이번에는 일본이 거부하였습니다.
또 태평양전쟁 말기 미합참본부 JWPC-3581-1 <한반도와 일본문제기밀문서>에 따르면
미국은 미․중․러․영 4개국이 한반도를 공동 점령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일제의 항복으로 이 점령계획은 취소되었습니다.
주변 열강은 한반도의 독점적인 지배가 가능할 때에는 단독 점령을 시도하고,
독점 지배가 어려울 때이면 분할 지배를 획책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열강들의 한반도 탐욕은 마침내 1945년 일제패망과
제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 과정에서 미소에 의한 38도선 분할점령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열강 중이 현재 한국이 마치 신으로 섬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미국이 왜 일본을 지원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러시아세력의 남진을 막는 것이 미국의 이익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일본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한국을 제물로 삼았습니다.
나는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싶다. 일본은 러시아에 대한 견제역을 담당하게 될 것이고,
일본은 지금까지의 행위로 봐서 한국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 (루즈벨트)
루스벨트는 1900년 무렵부터 “한국은 자치할 능력이 결여하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만약 일본이 법과 질서를 유지하여 좋은 정부를 수립해서 유능하게 통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905년 당시 주러 미국공사 마이어에게 “현재 만약 평화가 온다면 일본은 완전히 자주할 능력이 없음이 입증된 한국에 대해서 보호권을 가져야 한다”고,
일본의 ‘보호권’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루스벨트는 1904년 5월 스테른부르크와 러일전쟁의 강화조건을 상의하는 자리에서 “일본은 한국을 차지할 수 있다. 단 그들은 한국내에서의 미국의 권익보호를 보장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같은 해 6월에는 하바드대학 동창인 주미 일본특사 가네코 겐타로와 일본공사 다카히라 고고로에게 이런 사실을 공개하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있어서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이며 “한국의 민족은 가장 문명이 뒤진 미개한 인종이고, 게다가 한국인의 거의 모두는 자치하기에 전적으로 적합지 않으며, 장래 자치하기에 적합하게 될 아무런 징조도 없다는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입헌정체의 나라”이며, “일본의 민중은 ‘지성’ ․ ‘활기’에 넘치는 문명한 국민이다.”, “미국과 같은 자유로운 입헌체제의 나라, 공정과 번영의 나라” 라고 추켜세우고, 일본이 미국을 대신하여 한국을 보호하고 통치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루스벨트는 1905년 7월, 자신의 측근 중의 한 사람으로 개인적 신임하고 후일 자신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계승한 육군성장관으로(미국무성의 전신) 윌리엄 테프트를 일본으로 보냈습니다. 테프트는 7월 29일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겸 외상 카츠라 다로와 만나 극비리에 밀약을 맺었습니다. 이 밀약은 조약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합의각서’의 형식이지만 실질적인 협정입니다.
테프트와 카츠라는 이 각서에서 미국은 러․일전쟁 후 한국에서 일본이 지배권을 확립하는 것을 승인하고, 그 댓가로 일본은 미국이 한국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이권을 계속해서 침해하지 않을 것, 또한 미국의 ‘영유지’인 필리핀을 침해하지 않을 것 등을 서로 확인하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1898년부터 1902년까지 필리핀과 전쟁을 하여 미군 20만 명이 참전하여 4만 3천 여 명이 사망하고, 필리핀은 20만 여 명이 사망하였다. 미국은 그때까지 경험한 가장 길고 희생자가 많은 전쟁의 수렁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는데 일본의 양해가 필요했습니다. 대신 일본에 한국의 지배권을 용인해 주었습니다. 필리핀을 거쳐 일본에 들른 테프트는 카츠라의 ‘한국지배’ 요청에 대해 “대한제국으로 하여금 일본의 동의 없이 외국과 조약을 맺지 못하게 요구하는 범위에서 일본의 군대로써 한국에 대해 종주권을 확립하는 것은 현 전쟁의 필연적 결과요, 극동의 항구적 평화에 직접적으로 공헌할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루스벨트는 테프트에게 전문을 보내어 “당신이 카츠라 백작과 나눈 대화는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타당하다. 당신이 말한 모든 말을 내가 추인하는 바라고 카츠라에게 언급해 주길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1905년 7월 29일 문서로 작성한 밀약은 추후에 루스벨트의 승인을 받아 밀약의 내용을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으로 확인하였습니다. 테프트 - 카츠라밀약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하등의 침략적 의도를 갖지 않으며, 미국의 지배를 확인한다.
②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미․영․일 3국은 실질적인 동맹관계를 확인한다. ③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한다.
이렇듯 러일전쟁은 단순히 일본만의 승리는 아닌 것입니다. 미국이 일본을 대리인으로 삼아 러시아를 상대한 것이고, 그 결과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 정책의 대리인 역할을 맡길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재정지출을 줄이고자 일본의 역할을 증대시키고 있습니다. 미일협정을 통해 일본의 자위대가 방어적 역할에 국한되는 것에 벗어나 동맹국의 전쟁에 참여할 구실을 만들어 주고, 일본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나라로 법도 개정하였습니다. 또한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협정을 통해 한국의 군사정보도 손에 넣을 수 있고, 사드 배치로 미 MD 방위체제에 편입된다면, 명실상부하게 일본은 한국의 상위 위치에 포진하게 됩니다. 썰전에서 유시민이 예전에 말했듯이 미국은 사장, 일본은 부장, 한국은 대리정도의 위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대가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상황은 100여년전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가 러일전쟁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분명한 것입니다. 제가 러일전쟁승전탑을 복원해야 한다는 이유도 이러한 외세의존적 자세가 초래하는 비극에 대해 일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재 제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을 철거하고, 28미터의 러일전쟁탑을 복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기념관 위에 러일전쟁탑을 축소하여 복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러일전쟁이란 국가적 비극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서는 러일전쟁 승전탑을 복원하여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일부 사쿠라 도시라고 비난하는 국민들에게도 진해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줄 것입니다. 진해라는 도시는 단순이 벚꽃, 해군도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한국을 일깨우는 도시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도시로 탈바꿈하는 것이 저의 바램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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