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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저를 비난하는 트위터가 있더군요.
2016년 9월 19일 내용인데, 이제서야 발견했습니다.
태극기가 얼굴 사진에 있는 것을 보니,
박근혜 탄핵이전부터 태극기 부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남 YMCA, 지역원로로서 저명하신 공명탁, 김용환 목사님과 저를 동급으로 놓아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아마도 2016년 9월에는 박근혜가 기습적으로 사드를 성주로 배치하던 시기였으니,
그 문제와 관련하여 저를 비난하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충성을 다하는 분이 찌질한 과욕을 버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라고 하네요.
이제 지난주에 예고한대로 허정도 박사의 발제 내용을 중심으로 제가 약간 보충하여 경화동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경화동은 1910년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동네이름은 없었고, 이 지역을 한일거리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은 넓고 크다라는 의미가 있고, '일'은 제일이라는 뜻이 있으니
미래에는 아마도 큰 쓰임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있어서 한일거리라 불린 듯 합니다.
그리고 포스코 아파트가 있는 경화역 위 부분은 조천리라고 당시에 불렀습니다.
지금 이곳을 신주소로 보면 조천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910년 6월부터 일본은 진해에 군항은 건설하였고, 한일거리에 직교형 도시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일거리를 줌심으로 서부지역(현동, 도만리, 도천리, 여명리, 중평리, 좌천리, 신좌천리, 안곡리, 속천리) 9개마을과
공부지역(하구, 중동) 2개마을의 주민들, 총 390여가구 2,000여명의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냅니다.
바로 일제로부터 쫓겨난 조선인들을 당시 황무지 땅인 한일거리에 수용하였고,
이때부터 '한일거리'가 '경화동'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경화동은 일본식 동명이 거절하고 한국식 동명을 사용한 것으로,
慶(경사,경)和(화할 화, 화목할 화)란 이름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여러분들이 짐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직교형으로 이루어진 경화동 당시 사진)
당시 조선인들을 쫓아내고 화려하게 등장한 진해신도시와는 달리 일본군부에 의해 졸지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고,
수용당한 조선인들의 신도시가 경화동이었으니, 이들의 나라잃은 설움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이루 표현하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따을 빼앗기지 않을려고 저항도 하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 군부의 강한 총칼앞에 조선인들의 대항은 역부족이었습니다.
1910년 1월에 일본군부에 진해만시설조사위원회가 제출한 '진해군항시설지 실지답사보고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의 한국인 처리 기록을 보면
"한국인을 일본인등과 함께 살게 하는 것은 위생 등의 문제로 불가하다.
격리하는 것이 맞다. 격리시킬 위치는 신시가지 서쪽 덕산방면이 좋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건을 보아 알 수 있듯이 일본인은 한국인을 더럽고 불결한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보고서대로 한국인들은 덕산에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진해 신시가지와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조선인 거주지를 만들면
신도시 조성과정에 필요한 노동력 공급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즉, 덕산동은 다소 거리가 있기에 걸어서 신시가지에 이르는 데, 다소 멀기 때문입니다.
도보를 통해 신시가지에 이르는 데, 적절한 곳이 경화동이었기에 최종 결정 때 덕산동에서 경화동으로 변경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경화동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삶의 터전도 빼앗겨 먹고 살기도 힘든 고통 속에 있는데,
여기에 더해 일본의 군부도시인 진해신시가지 공사에 강제부역을 해야 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1907년 3월부터 일제는 마을을 철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일본도 강제로 빼앗는 것이 아니라 명분이 필요했기에 나름대로 보상책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값싼 보상으로 인한 한국인들의 불만 폭발을 우려하여 삼엄한 감시 속에 비밀리에 보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사실상 헐값으로 한국인들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기에 빼앗겼다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조선인들의 반발이 있었습니다.
1905년에는 '도만이'라는 조선인이 개(도만포)부근에서 측량하던 일본해군을 쫓아내기도 하였고,
1906년에는 토지보상비를 거부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910년에는 한국인 소유의 삼림을 잡아 먹을려는 마산 부윤의 아들의 횡포를
둘리(석동)마을의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막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일시적으로 막아낸 것일 뿐, 이들은 후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큰 불행이 닥쳐올 것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힘없는 조선인들이 일본군부의 총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11개마을의 2천여명 주민들은 당시 일본군부가 준비해 좋은
진해신시가지 동쪽 2.5킬로 떨어진 한일거리라 불렸던 황무지 벌판에 강제로 집단이주를 당하였습니다.
일본군은 가구당 45평으로 이루어진 택지를 조선인에게 주었고, 4미터 내외 좁은도로의 격자형으로 조선인들을 배치하였습니다.
위 배치과정에서 길 중간중간에 소방목적으로 7개의 공터를 일본군은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공터가 후에 일본군의 비행장 건설로 열지 못하게 된 풍호동의 '풍덕개장'이 옮겨와
매 3일과 8일에 열리는 5일장 장터로 사용되었는 데, 오늘날 경화시장의 시초가 된 장터입니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1번은 나무전, 2번은 8일 싸전, 3번은 3일 일용잡화, 4번은 8일 일용잡화, 5번은 3일 고기전, 6번은 3일 싸전, 7번은 8일 고기전이 열렸습니다.
즉, 일제 시데에는 3일과 8일에 7군데서 분산하여 장이 열렸지만, 지금은 3일과 8일에 통합해서 운용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때 경화시장으로 사용된 시장부지는 현재 주민들의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식민지 도시는 지배지와 피지배자의 공간이 격리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지만 지배자만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주민을 내쫓아 별도의 수용지를 만든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또한 위생문제로 격리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치안문제로 격리를 했을 것이며,
보다 근본적으로 들어가면 교육에 있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차별화하는
일본의 '내선별학' 이라는 통치원리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군사기밀이 필요한 군사도시라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2차대전시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한 후
유대인들을 강제로 연행하여, 지정된 구역으로 가두어 두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 곳을 '게토'라고 하는 데, 바로 일본군부가 세운 게토가 경화동인 셈인 것입니다.
이렇듯 경화동은 삶의 터전을 일본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자들이 격리되어 살던 빼앗긴 자들의 구역이었습니다.
또한 일제가 자신들을 위해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에 둠으로써
조선인들의 노동력 착취를 위해 만든 구역이 경화동인 것입니다.
빼앗긴 자들의 처절한 삶과 한이 묻어 있는 곳인, 경화동, 일제강점기 처절한 삶의 현장이 바로 경화동입이다.
이 경화동의 의미를 되살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화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현재 살고 있는 우리 후손들의 책무가 아닐까요. '빼앗긴 자들의 구역' 경화동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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