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의 지명, 진해
2010년 진해에서는 통합반대운동이 격렬했습니다. 그럼에도 2010년 12월에 진해시의회에서는 주민의사를 무시하고 통합을 강행했습니다. 이후 국회에 가서 통합에 관한 법률통과를 저지할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2011년 3월 1일에 통합은 가결되고 말았습니다. 2011년 7월 역사적 전통이나 도시의 경쟁력 차원에서 통합시 명칭을 창원시로 결정하였습니다. 2011년 12월부터 진해시되찾기 운동이 다시 시작되었고, 2012년 총선시에는 진해시되찾기 명분하에 야권후보가 난립했습니다. 통합할시 보이지도 않던 후보들이 선거때에는 진해시되찾기 투사처럼 행동하는 씁쓸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실패했고, 2012년 대선공약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당시 권영길 도지사 후보는 3개시 분리를 공약으..
진해소식
2017. 8. 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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