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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철 목사라 하면 흔히 연상되는 단어가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한 성직자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주기철 영화를 보았는 데, 그 곳에 나타난 대부분의 내용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모진 고문을 당하다 끝내 숨을 거둔 장면입니다. 물론 당시 대부분 기독교계에서 일제의 압력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허용했음에도, 끝까지 자기 신념을 지키고 싸웠으니 그것 자체만으로도 존경을 받아야 할 분입니다. 하지만 너무 신사참배 거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진정한 주기철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는 진해 웅천에서 태어나 웅천교회를 어릴 때 다닌 관계로 주기철 목사 기념관이 고향인 진해 웅천에 세워졌습니다. 항간에는 북한에 있는 주기철 목사의 유해를 송환해 고향에 묻어야 한다는 말도 있던데, 주기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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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웅천에 가면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쪽에는 왜군의 종군 신부에 불과한 세스페데스를 기념하여 창원시가 시민의 세금으로 공원을 조성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또한 항일독립운동가였던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왜군의 승리에 보탬이 되고자 했던 종군신부의 기념관, 다른 쪽은 항일운동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 창원시는 친일을 미화하는 것인지, 항일독립을 강조하는 것인지 참으로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세스페데스는 조선땅에 최초로 발을 디딘 서양선교사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도였던 왜장 고니시유키나가의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온 선교사로서 조선인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 왜군을 상대한 신부입니다. 한마디로 전시 왜군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
복원된 웅천읍성 동문과 주변 성곽.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진해지역 중심지였으나 임진왜란 때 왜군한테 점령돼 웅천왜성의 지성으로 사용됐다. 경남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돼 있다.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 ⑧ 진해 웅천·안골·명동·자마왜성 “ 이 나라에 내가 내 발로 왔다면야 고향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나는 무도한 싸움 때문에 붙잡혀 끌려온 희생자예요. 아무리 애정을 베풀어준다 하더라도 잡혀 온 사람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날이 오지 않는 한, 이 나라는 원수의 나라일뿐이지요. 이 나라를 어떻게 고향이라 생각할 수 있겠어요.” 임진왜란 발발 다음해인 1593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진해 웅천왜성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소녀 ‘수란’은 모리 레이코(森禮子)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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