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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1시 창원하나교회(창원YMCA)에서 약산 김원봉에 대하여
최필숙 선생님으로부터 약2시간 30분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강의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1시간 반정도 하리라 예상했는데, 독
립운동의 흐름 등과 함께 위안부, 통일문제까지 다양하게 다루다보니
1시간 반으로는 부족하였습니다.
다른 강의 같으면 2시간 반한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겠지만,
오늘 강의는 상당히 우리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많다보니
한번도 딴눈팔지 않고 제대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중국과 한반도의 지도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의 모습의 닭머리와 같다고 하면서 한반도는 부리와 같은 모습인데,
4개의 먹이를 먹지 못하고 그 먹이에게 닭머리가 먹힌 셈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아이러니한 일은 벌어지면 안 될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아들에게
수의와 한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떳떳히 죽는 것이 부모에 대한 효도라고 하면서
떳떴하게 죽고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한 편지입니다.
이 편지는 일본인조차 감동하여 '시모시자(是母是子)'라는 표현으로 칭송한다고 하는 데,
과연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란 말입니다.
3.1 운동에 대해서는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김규식 선생이 국제연맹에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조선의 행동이 있어야 국제연맹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여
이런 움직임의 일환으로 3.1운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3.1운동때 1만오천명이 희생되었는 데,
한국에서는 단 한사람 유관순 열사만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3.1운동당시 33인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곳이 태화관인데,
이 태화관은 기생집으로 당시 기생 중의 하나가
33인 중 한 사람에게 아빠라고 부르는 기둥서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아빠라는 말은 우리 말에는 없는 말인데,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우리 자녀들이 쓰는 아빠라는 말의 기원이 그리 좋지 못하네요.
어쨋든 33인의 민족대표라는 자들은
태화관에서 조선총독부에 전화를 걸어 스스로 잡혀갔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본 옥사에 갇혀 약간의 고문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 전향하여 풀려났다고 하는 데,
이들을 3.1운동의 대표인사로 역사에 기록해선 안 될 것입니다.
이제 약산 김원봉 선생에 대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김원봉 선생은 고모부로부터 호출을 받고 의열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고 합니다.
의열단을 김원봉이 조직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고모부부터 신흥무관학교에 보내졌고,
그 곳에서 6개월 교육을 받고 폭탄제조법 등 군사학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13명을 데리고 나와 의열단의 조직체계를 갖추었던 것입니다.
의열단은 일제의 주요기관에 폭탄테러를 감행하여,
당시 일본은 엄청난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당시 백범 김구에게는 60만원을, 김원봉에게는 100만원을 현상금으로 걸었으니
백범 김구 선생이 김원봉을 시기할만도 한 것 같습니다.
제2차대전 발발후 의열단은 조선의용대로 개편하여 중국군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일본과의 태항산 전투에서 중국의 8로군의 퇴각로를 조선의용군이 열어 주어
당시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이 박근헤 대통령에게 한국과 중국은 8로군 혈맹이란 표현도 나온 것입니다.
해방 후 김원봉 선생은 남한으로 돌아오지만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승만은 일제세대 평양경찰서장 출신 악질친일파를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에 임명합니다.
노덕술은 김원봉 선생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여
중부경찰서에 구금한 후 온갖 모욕과 고문을 자행합니다.
김원봉 선생은 이 당시 일본군에게도 당해보지 못한 치욕을 한국친일파 경찰에게 당한 것입니다.
다행히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탄원으로 풀려났지만,
풀려난 뒤에도 온갖 감시를 당하다보니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없었으며,
동생들마저도 고문을 당하는 사건이 생기니 남한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여운형 선생도 암살당하고 다음차례는 김원봉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습니다.
즉, 김원봉 선생의 자발적 월북이 아니라
남한이 김원봉 선생을 위협하니 어쩔 수 없는 월북이었던 것입니다.
김원봉 선생은 이후 북한에서 장관 등의 직책도 수행하다가
결국에는 북한에서도 숙청당하는 비운의 운명을 맞습니다.
한국에서는 김원봉 선생이 자발적으로 월북하고,
북한에서 장관급의 직책을 맡았다하여 서훈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월북도 남한의 책임이 1차적 원인이며,
그의 공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 암살의 영향으로 국민들도 원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정부는 더 이상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독립운동가 김원봉을 이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60년대 한일협정 당시 3만불의 행방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점,
지난해 12.28한일협상의 문제점,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 등
이 모든 문제가 남북이 분단의 원인이며,
독립투사들도 분단은 바라지 않기에 하루 속히 평화를 정착하고 통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아직도 친일파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이들은 분단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유지에만 급급하니,
언제나 되어야 독립투사들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지 참으로 답답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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