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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산다는것 2014. 11. 22. 17:49

백년전쟁- 두 얼굴의 이승만
이승만은 사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 미 CIA 보고서 

나치독일의 선전장관 Joseph Goebbels, 대중선동의 천재인 Goebbels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면 그 나라 국민들은 자동적으로 세부류로 나뉜다. 한쪽에는 Registance(저항세력), 다른 쪽에는 Collaborator(협력세력)이 있고, 그 사이에는 머뭇거리는 Masses(대중)이 있다. 그 나라 국민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온갖 부가 약탈되는 것을 참고 견디게 하려면 머뭇거리는 대중을 Registance(저항세력)에 가담하지 않고 Collaborator(협력세력)편에 서도록 설득해야 한다.

일본이 침략하자 조선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한쪽에는 독립운동가들(안중근, 김구), 그 반대쪽에는 친일민족반역자들(이완용, 방응모)가 있었고, 그 사이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있었다. 일본은 민중들이 친일파의 편에 서도록 치밀한 작전을 벌였다. 그 핵심이 바로 식민지 근대화론이었다. 일본이 낡은 조선을 발전시킨다. 이 얘기를 반복적으로 선전하여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친일파를 앞세워 땅과 쌀을 빼앗고, 이름과 말도 빼앗았다. 심지어 전쟁에 동원하여 생명까지 빼앗았다. 이에 맞서 독립운동 세력은 해외에 나가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군을 조직했다. 자신이 태어난 땅과 민족을 지키고 싶었던 한국의 Registance(저항세력), 그들은 독립을 되찾아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꿈을 갖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일제의 Collaborator(협력세력) 친일파들은 “천황의 신민으로 사는 것이 조선 민족의 운명이다”며 독립군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비웃었다. 이들 중에는 혈서까지 써서 기어코 일본군이 된자도 있었고, 심지어 독립군을 잡아죽이는 일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것이 독립군 토벌을 위한 친일파 특수부대, 간도특설대였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군들은 일제보다 친일파들을 더 증오하고 경멸했다. 그래서 친일파들을 암살하기 위해 비밀조직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Registance(저항세력)와 일제의 Collaborator(협력세력), 두세력의 길고긴 전쟁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일본이 항복하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일본군들은 철수를 준비하고, 기세등등하던 친일파들은 겁에 질려 숨어버렸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이미 은밀한 거래를 끝냈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미국과 소련, 두 나라는 한반도를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38선 이북은 소련이, 이남은 미국이 점령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서울에 들어왔다. 그러자 한국인들은 또다시 세부류로 나뉘었다. 한쪽에는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세우려는 독립운동세력, 반대편에는 살아남기 위해 미국에 절대복종하는 친일파들, 그리고 그사이 혼란에 빠진 대다수 민중이 있었다. 미군정은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작전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숨어있던 친일경찰과 관리들을 즉각 복귀시켰다. 그리고 친일파세력을 앞세워 자주독립세력을 짓밟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내에서 건국을 준비하던 독립국가세력은 크게 당황하였다. 그들은 해외독립운동 세력이 돌라오기만 애타게 기다렸다.

1945년 10월, 드디어 미국에 있던 이승만이 귀국했다. 이어서 백범 김구가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과 함께 국내로 들어왔다. 공존이 불가능한 Registance(저항세력)와 Collaborator(협력세력), 이제 그들의 결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중요한 순간에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이 기다렸던 수장은 임시정부의 수장인 김구가 아니었다. 프린스턴 박사학위를 가진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 이승만이었다. 결전을 앞둔 독립운동세력의 기대주 이승만,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전혀 없다. 그는 아주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나를 따르시오. 덮어놓고 뭉칩시다. 그런데 과연 이승만은 믿고 따를만한 지도자인가? 만약 아니라면 독립운동 세력은 정말 위험해진다. 비밀이 해제된 미국 중앙정보부(CIA)문서, 이 문서에는 이승만의 인격이라는 파일이 존재한다. 여기에 충격적인 얘기가 적혀있다. “이승만은 사적인 군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이 목적을 추구하며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만약 이게 진실이라면 독립운동 세력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운명이 위험하다. 이승만, 그는 정말 출세밖에 모르는 사이비 독립운동가일까? 아니면 CIA가 잘못 판단한 것일까? 

몰락한 양반집안에서 태어난 이승만, 그는 아주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이 선택은 그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그 당시 미국 기독교계는 조선에 기독교를 널리 전파할 조선인 목사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이승만은 목회자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고 죠지워싱턴대학에 특별생으로 입학하는 특혜를 받았다. 그리고 대학을 마치자 박사학위 취득을 목표로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하버드대에서 낙제하고 프린스턴대로 갔는데, 이 과정에서도 미장로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석사학위도 없이 박사과정에 입학했고, 게다가 2년안에 박사학위를 준다는 파격적인 보장을 받았다. 결국 조선의 기독교를 확산시키고자 하는 미국 교단의 열망에 힘입어 이승만은 석사와 박사를 한꺼번에 받는 행운을 안았다.그 후 이 명문대 학위들은 이승만에게 전지전능한 수호천사가 되어 주었다. 광적인 추종자들을 모아주었고, 그가 출세의 문을 두드리면 그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1913년 이승만은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이 때부터 그의 화려한 출세신화가 시작된다. 하와이로 그를 부른 건 친형제와 다름없는 박용만이었다. 그는 무장투쟁만이 조국을 독립시킬수 있다는 Registance(저항세력)였다. 그는 미국의 대학을 마치고 하와이에서 독립군 조직을 만든 후 사관학교를 설립했다. 이에 반해 이승만은 교인들을 향해 교육사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승만이 하는 교육내용은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하는 교육과 전혀 달랐다. 그가 호놀롤루 신문에 쓴 글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일본을 비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반일감정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일본 신문들은 나에대해 오해를 하지 말기를 바란다’ ‘오해는 빨리 풀수록 좋다’ 오히려 이승만은 일본에 대해 아주 우호적인 시각을 갖은 인물이었다. 그는 하와이에 오기 직전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일합방후 3년도 지나기전에 한국은 낡은 인습이 지배하는 느림보 나라에서 활발하고 떠들썩한 산업경제의 한 중심으로 변모했다” 놀랍게도 이승만의 말은 일본의 식민지 경제론과 똑같다. 아니 미국 신문에다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을 발전시켰다고 말한다면, 미국의 국민들이 한국의 독립을 응원해 줄 이유가 있을까? 이 사건으로 본다면 그는 한국이 독립할 이유가 없다고 선전하고 다니는 악질 친일파이다. 그럼 대체 이승만의 정체가 뭘까? 그는 아주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미국과 일본이 관계가 좋을 때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극찬하면서 미국인들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러나 한국인들과 있을 때는 반일의식이 강한 교육자로 변신했다. 그런 이중플레이를 통해 하와이 한인사회를 지배하는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이승만은 자신을 안중근과 같은 독립운동가로 보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는 습관처럼 손끝에다 입김을 부는 괴상한 행동을 했다. 하와이 한인들이 궁금해 하면 “내가 일본감옥에서 고문을 당해 아직도 손끝이 시리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순진한 한인들에게는 아주 잘 먹혔다.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정작 이승만은 소박하게도 그들에게 딱 한가지만 요구했다. “맹목적으로 나를 따르라” 대체 이승만은 무슨 일을 하려고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추종자들을 원한 것일까? 이승만의 첫 번째 목표는 박용만을 지지하는 하와이 국민회를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한인들은 정기적으로 독립운동 성금을 냈고, 이로 인해 국민회는 미주에서 최고의 독립자금 조달체였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이승만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테러도 불사하였다. 이승만, 그는 사이비 기독교인였던 모양이다. 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어기고 피튀기는 테러까지 동원하며 국민회를 장악하였다. 그리고 네 이웃의 소유를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도 어기며, 현란한 부동산 제테크를 착수했다.(중략)